2007년 03월 05일
"중요한 것은 너의 영어가 아니라 너의 생각이다!" -영어강의 대세론에 대해
지금 대학가는 너나 할 것 없이 "영어강의"를 하겠다고 난리다. 새로 임용할 교수의 자질로 영어강의가 가능한지가 매우 중요한 사항처럼 되어 있고, 실제로 생전 영어 강의 한번 안해본 교수들에게도 당장 다음학기부터 영어로 강의하라고 윽박지르고 있는 실정이다. 왜 갑자기 이 난리인가?
대학측의 대답은 짐작가능하다. "대학의 국제 경쟁력 강화", "글로벌 리더쉽 양성" ...
너무 좋은 말들이다. 하지만 나는 대학에서 영어 강의를 하는 것과 이런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과연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정말 알고 싶다.
이곳 보스턴에 나와 강의 꽤나 한다는 학자들의 강연을 나는 요즘 자주 듣는다. 그 중에는 퓰리처 상을 두 번이나 받은 윌슨도 있고, 지금 내 지도교수처럼 100만불의 선인세를 받고 책을 쓰는 베스트셀러 저자도 있다. 이곳 보스턴에서는 똑똑하고 말잘하고 글잘쓰기로 유명한 학자들은 정말 한 둘이 아니다. 그들의 강연을 듣고 있으면 정말 행복하다. 때로는 감동적이기도 하다. 그들처럼 영어로 강의를 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 적도 많다. 너무 부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너무 억울하기도 하다. 내가 영어권에서 태어나 공부를 한 사람이었더라면 지금 먼 발치에 있는 그들이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지는 않았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현대의 아카데미 사회에서 비영어권에서 공부했다는 것 자체는 분명 핸디켑이다. 적어도 의사소통 면에서는.
미국에서 오랫동안 공부한 사람도 유창한 영어강의를 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닌 것 같다. 강의는 학회 발표가 아니기 때문에 외워서 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여기 보스턴에 와보니 그게 더욱 실감난다. 강의 도중에 학생들은 질문이 생기면 가차없이 손을 든다. 그러면 교수는 자신이 강의하다 말고 혹은 그 대목을 대략 마무리한 상태에서 질문에 대답하고 강의를 이어간다. 우리처럼 강의 다 끝날 때 쯤에 "질문있어요?"라고 쫓기듯 나가는 수업은 여기서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어떤 학생은 교수가 자신의 손을 못 보고 계속 강의하니까 질문을 받아줄때까지 10분이고 손을 번쩍 들고 있기도 한다. 여기의 강의는 그야말로 쌍방적이다. 미국에서 10년을 공부한 한국 유학생도 대학 강의실에 들어가 강의하는게 부담스러운 이유 중 하나도 이런 쌍방적인 강의 형태 때문이기도 하다. 쉽게 말해, 외워서만은 안된다는 것이다.
자, 이제 영어강의 열풍이 불고 있는 한국의 대학 강의실을 상상해보자. 일단 모든 교수들이 영어강의를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선 모든 교수들이 다 영미권에서 학위를 마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영미권에서 학위를 마친 경우에도 외국에서 영어강의를 상당기간 해오지 않은 교수들에게도 영어강의는 큰 부담일 것이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공부를 한 사람의 경우에는 어떨까? 학부/석/박사를 국내 대학에서한 사람(요즘 "토종 박사"라고들 하지.)에게 영어강의는 한마디로 "고문"일 수 있다.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들어본 적도 거의 없고 영어로 전공 토론을 해본 적도 거의 없는 환경에서 공부한 사람이 전공강의를 영어로 한다는 것은 정말로 어렵다(불가능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교수가 더듬거리는 영어로 전공 지식을 전달할 때, 학생들이 과연 그 강의를 즐길 수 있을지는, 꼭 실험을 해보지 않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풍경이다.
어떤 개념과 이론, 그리고 대학에서 배움직한 고급 지식들을 우리말로 잘 전달하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이는 대학에서 강의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영어로 지식을 전달하는 수업(영어를 배우는 수업이 아닌.)을 거의 들어본 바가 없는 대학생들에게 갑자기 영어강의를 한다는 것도 상식적으로는 납득하기 힘들다. 대학에서 영어강의를 정착시키려면 유치원, 초중고를 거치면서 영어강의(영어를 배우는 수업이 아닌 영어로 지식을 배우 수업)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대학생들에게도 혼란이 줄어들 것이다.
나는 지금, 대학에서 영어강의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그런 것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는 우리가 너무 준비가 안되어 있다는 점을 우선적으로 지적하려는 것이다. 준비가 안되기는 교수나 학생이나 마찬가지이다. 물론 분야마다 좀 다르기는 하다. 이공계열은 사정이 좀 났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전공 용어들을 그냥 영어로 사용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편리한 경우가 더 많고, 사실 이공계 영역은 언어에 민감하기 보다는 수식, 논리, 방법 등에 더욱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의 이공계열 교수들은 인문사회계열 교수들보다 국제적 수준(SCI 등의 지표로 대표될 수 있는)의 작업들을 더 많이 하기 때문이다. 반면 인문사회계열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국제화 지수가 낮다. 부분적으로는 이공계열 비해 언어의 의미에 민감한 작업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어로 논문을 출판하는 이공계열 교수에 비하면 같은 일을 하는 인문사회계열 교수의 수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물론 이것이 인문사회계열 교수들이 이공계열 교수에 비해 평균적으로 영어를 더 못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어쨌든 내가 말하려는 바는, 영어 논문을 써본 경험이 매우 적은 교수들에게 영어강의를 요구하는 것도 이해하기 힘든 요구라는 점이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묻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이런 한국 아카데미아의 정황 속에서 영어강의를 무리하게 요구하는 것이 과연 대학의 글로벌화 지수를 높이는 최선의 방법인가? 사실 이 물음에 대한 답을 -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확신있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 아직 이것과 관련한 연구가 없기 때문에. 혹은 어딘가 있다 해도 자료로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대학의 교수들이 왜 이런 중요한 실험에 치열한 논쟁이 없는지 정말 궁금하다. 아니, 사실은 짐작은 할 수 있다. 영어강의에 반대해도 "자기는 못하니까 반대하는 거지!"라는 비난을 받고 싶지 않은 것일 수 있다. 반대 주장이든 찬성 주장이든, 내가 보고 싶은 것은 그들의 "논거"이다. 영어강의가 대세가 되고 있는 이런 중요한 전환기에 그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면야 좋지"라거나 "지금 어떻게 하냐?"라는 주장만 하고 있을 뿐, 한국의 영어교육 환경에서 대학에서 갑자기 전공지식을 영어로 전달하는게 교육적 효과가 있는지, 토종박사들이 갑자기 한 학기 만에 영어강의를 유창하게 할 수 있는 언어학적 근거가 있는 것인지, 비영어권 대학(가령, 세계 대학 평가에서 늘 10위안에 드는 동경대, 그리고 유럽의 여러 대학들)에서는 학문의 글로벌화를 위해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지 등등, 그런 주장들을 하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자료들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런 물음은 일차적으로 인지과학(심리학, 언어학, 뇌과학 등), 교육학, 역사학, 사회학 등에서 탐구되어야 할 문제이지 대학 당국에서 지침을 내려야 하는 주제는 아니다. 나는 이런 물음에 대한 충분한 대답이 주어지지 않는 한, "대학에서의 영어강의가 학문의 국제화지수를 높인다"라는 자명해보이는 명제를 자명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 Show me the evidence!
하지만 한가지 자명해보이는 것이 있다. 지금 같은 "수준"의 한국의 대학강의로는 국제화는 멀었다는 사실이다. 영어를 강의를 안해서가 아니라 강의의 품질이 국제 수준에 못 미친다는 얘기다. 이건 외국의 유수한 대학에서 진행되고 있는 수업을 주의깊에 참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명한 사실이다. 2-3시간의 수업을 위해 교수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학생을 돕고 있는지를 말이다. 수업에 들어와 적당히 울겨먹거나 때우고 가는 교수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지금 대학가에서 그토록 원하는 국제수준의 대학의 현실이다. 국제 수준의 대학에서는 자신의 연구 프로그램이 없는 교수는 살아남을 수 없다. 강의에 불성실한 교수는 학생들에게 쫓겨난다. 우리 대학가에 지금 필요한 것은 영어강의가 아니라 수준높은 강의, 성실한 강의, 학생들이 뭔가를 배워가는 강의이지 않을까? 국제화하고 싶으면 "내용"부터 국제화를 해야하는 게 순서 아닌가? "표현"은 "내용" 그 다음의 문제이다.
영어강의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전공을 불문하고 거의 모든(소위 일류라 그러는) 대학의 임용조건 중 하나가 되어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건 내가 그것을 할 수 있냐 없냐의 개인적인 문제로 축소되어 논의되어서는 곤란하다. 이것은 지금 한국의 대학에서 국제화를 위해 필요한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성찰하고 연구하고 치열하고 논쟁을 해야 할 주제이지, 이미 입증된, 정답이 있는 주제는 아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무리 유창한 영어 표현을 한다 해도 생각의 수준이 국제화되지 않았다면, 영어가 모국어인 중고등학생의 지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아주 평범한 사실이다. 박사과정 시절에 영국에 잠시 연구차 갔을 때의 일이다. 세미나에서 발표를 하기로 정해져 있었는데 너무 불안해서 그곳 지도교수한테 "나의 부족한 영어 때문에 세미나 발표를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심각한 이메일을 보낸적이 있었다. 하지만 대답은 아주 명료했다.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너의 영어가 아니다. 너의 생각이다."라는 대답이었다.
우리 대학은 세상을 선도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어떻게 하면 생산해낼 것인지에 천착해야 할 것이다. 만일 영어로 전공강의를 하는 것이 그런 아이디어를 얻는데 필수적이라는 점이 명확히 입증된다면, 그때 가서 영어강의 정책을 추진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입증되지도 않은 이론을 가지고 모든 대학을 흔들어 놓고 교육의 지형을 뒤바꿔 놓는 일은 부동산 정책에 실패하는 것보다 더 혼란스런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세계적인 대학을 만들고 싶다면, 세계적인 생각이 토론되는 강의실을 만들라! 그게 영어든 한국어이든.

대학측의 대답은 짐작가능하다. "대학의 국제 경쟁력 강화", "글로벌 리더쉽 양성" ...
너무 좋은 말들이다. 하지만 나는 대학에서 영어 강의를 하는 것과 이런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과연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정말 알고 싶다.
이곳 보스턴에 나와 강의 꽤나 한다는 학자들의 강연을 나는 요즘 자주 듣는다. 그 중에는 퓰리처 상을 두 번이나 받은 윌슨도 있고, 지금 내 지도교수처럼 100만불의 선인세를 받고 책을 쓰는 베스트셀러 저자도 있다. 이곳 보스턴에서는 똑똑하고 말잘하고 글잘쓰기로 유명한 학자들은 정말 한 둘이 아니다. 그들의 강연을 듣고 있으면 정말 행복하다. 때로는 감동적이기도 하다. 그들처럼 영어로 강의를 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 적도 많다. 너무 부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너무 억울하기도 하다. 내가 영어권에서 태어나 공부를 한 사람이었더라면 지금 먼 발치에 있는 그들이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지는 않았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현대의 아카데미 사회에서 비영어권에서 공부했다는 것 자체는 분명 핸디켑이다. 적어도 의사소통 면에서는.
미국에서 오랫동안 공부한 사람도 유창한 영어강의를 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닌 것 같다. 강의는 학회 발표가 아니기 때문에 외워서 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여기 보스턴에 와보니 그게 더욱 실감난다. 강의 도중에 학생들은 질문이 생기면 가차없이 손을 든다. 그러면 교수는 자신이 강의하다 말고 혹은 그 대목을 대략 마무리한 상태에서 질문에 대답하고 강의를 이어간다. 우리처럼 강의 다 끝날 때 쯤에 "질문있어요?"라고 쫓기듯 나가는 수업은 여기서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어떤 학생은 교수가 자신의 손을 못 보고 계속 강의하니까 질문을 받아줄때까지 10분이고 손을 번쩍 들고 있기도 한다. 여기의 강의는 그야말로 쌍방적이다. 미국에서 10년을 공부한 한국 유학생도 대학 강의실에 들어가 강의하는게 부담스러운 이유 중 하나도 이런 쌍방적인 강의 형태 때문이기도 하다. 쉽게 말해, 외워서만은 안된다는 것이다.
자, 이제 영어강의 열풍이 불고 있는 한국의 대학 강의실을 상상해보자. 일단 모든 교수들이 영어강의를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선 모든 교수들이 다 영미권에서 학위를 마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영미권에서 학위를 마친 경우에도 외국에서 영어강의를 상당기간 해오지 않은 교수들에게도 영어강의는 큰 부담일 것이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공부를 한 사람의 경우에는 어떨까? 학부/석/박사를 국내 대학에서한 사람(요즘 "토종 박사"라고들 하지.)에게 영어강의는 한마디로 "고문"일 수 있다.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들어본 적도 거의 없고 영어로 전공 토론을 해본 적도 거의 없는 환경에서 공부한 사람이 전공강의를 영어로 한다는 것은 정말로 어렵다(불가능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교수가 더듬거리는 영어로 전공 지식을 전달할 때, 학생들이 과연 그 강의를 즐길 수 있을지는, 꼭 실험을 해보지 않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풍경이다.
어떤 개념과 이론, 그리고 대학에서 배움직한 고급 지식들을 우리말로 잘 전달하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이는 대학에서 강의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영어로 지식을 전달하는 수업(영어를 배우는 수업이 아닌.)을 거의 들어본 바가 없는 대학생들에게 갑자기 영어강의를 한다는 것도 상식적으로는 납득하기 힘들다. 대학에서 영어강의를 정착시키려면 유치원, 초중고를 거치면서 영어강의(영어를 배우는 수업이 아닌 영어로 지식을 배우 수업)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대학생들에게도 혼란이 줄어들 것이다.
나는 지금, 대학에서 영어강의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그런 것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는 우리가 너무 준비가 안되어 있다는 점을 우선적으로 지적하려는 것이다. 준비가 안되기는 교수나 학생이나 마찬가지이다. 물론 분야마다 좀 다르기는 하다. 이공계열은 사정이 좀 났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전공 용어들을 그냥 영어로 사용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편리한 경우가 더 많고, 사실 이공계 영역은 언어에 민감하기 보다는 수식, 논리, 방법 등에 더욱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의 이공계열 교수들은 인문사회계열 교수들보다 국제적 수준(SCI 등의 지표로 대표될 수 있는)의 작업들을 더 많이 하기 때문이다. 반면 인문사회계열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국제화 지수가 낮다. 부분적으로는 이공계열 비해 언어의 의미에 민감한 작업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어로 논문을 출판하는 이공계열 교수에 비하면 같은 일을 하는 인문사회계열 교수의 수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물론 이것이 인문사회계열 교수들이 이공계열 교수에 비해 평균적으로 영어를 더 못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어쨌든 내가 말하려는 바는, 영어 논문을 써본 경험이 매우 적은 교수들에게 영어강의를 요구하는 것도 이해하기 힘든 요구라는 점이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묻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이런 한국 아카데미아의 정황 속에서 영어강의를 무리하게 요구하는 것이 과연 대학의 글로벌화 지수를 높이는 최선의 방법인가? 사실 이 물음에 대한 답을 -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확신있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 아직 이것과 관련한 연구가 없기 때문에. 혹은 어딘가 있다 해도 자료로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대학의 교수들이 왜 이런 중요한 실험에 치열한 논쟁이 없는지 정말 궁금하다. 아니, 사실은 짐작은 할 수 있다. 영어강의에 반대해도 "자기는 못하니까 반대하는 거지!"라는 비난을 받고 싶지 않은 것일 수 있다. 반대 주장이든 찬성 주장이든, 내가 보고 싶은 것은 그들의 "논거"이다. 영어강의가 대세가 되고 있는 이런 중요한 전환기에 그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면야 좋지"라거나 "지금 어떻게 하냐?"라는 주장만 하고 있을 뿐, 한국의 영어교육 환경에서 대학에서 갑자기 전공지식을 영어로 전달하는게 교육적 효과가 있는지, 토종박사들이 갑자기 한 학기 만에 영어강의를 유창하게 할 수 있는 언어학적 근거가 있는 것인지, 비영어권 대학(가령, 세계 대학 평가에서 늘 10위안에 드는 동경대, 그리고 유럽의 여러 대학들)에서는 학문의 글로벌화를 위해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지 등등, 그런 주장들을 하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자료들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런 물음은 일차적으로 인지과학(심리학, 언어학, 뇌과학 등), 교육학, 역사학, 사회학 등에서 탐구되어야 할 문제이지 대학 당국에서 지침을 내려야 하는 주제는 아니다. 나는 이런 물음에 대한 충분한 대답이 주어지지 않는 한, "대학에서의 영어강의가 학문의 국제화지수를 높인다"라는 자명해보이는 명제를 자명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 Show me the evidence!
하지만 한가지 자명해보이는 것이 있다. 지금 같은 "수준"의 한국의 대학강의로는 국제화는 멀었다는 사실이다. 영어를 강의를 안해서가 아니라 강의의 품질이 국제 수준에 못 미친다는 얘기다. 이건 외국의 유수한 대학에서 진행되고 있는 수업을 주의깊에 참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명한 사실이다. 2-3시간의 수업을 위해 교수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학생을 돕고 있는지를 말이다. 수업에 들어와 적당히 울겨먹거나 때우고 가는 교수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지금 대학가에서 그토록 원하는 국제수준의 대학의 현실이다. 국제 수준의 대학에서는 자신의 연구 프로그램이 없는 교수는 살아남을 수 없다. 강의에 불성실한 교수는 학생들에게 쫓겨난다. 우리 대학가에 지금 필요한 것은 영어강의가 아니라 수준높은 강의, 성실한 강의, 학생들이 뭔가를 배워가는 강의이지 않을까? 국제화하고 싶으면 "내용"부터 국제화를 해야하는 게 순서 아닌가? "표현"은 "내용" 그 다음의 문제이다.
영어강의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전공을 불문하고 거의 모든(소위 일류라 그러는) 대학의 임용조건 중 하나가 되어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건 내가 그것을 할 수 있냐 없냐의 개인적인 문제로 축소되어 논의되어서는 곤란하다. 이것은 지금 한국의 대학에서 국제화를 위해 필요한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성찰하고 연구하고 치열하고 논쟁을 해야 할 주제이지, 이미 입증된, 정답이 있는 주제는 아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무리 유창한 영어 표현을 한다 해도 생각의 수준이 국제화되지 않았다면, 영어가 모국어인 중고등학생의 지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아주 평범한 사실이다. 박사과정 시절에 영국에 잠시 연구차 갔을 때의 일이다. 세미나에서 발표를 하기로 정해져 있었는데 너무 불안해서 그곳 지도교수한테 "나의 부족한 영어 때문에 세미나 발표를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심각한 이메일을 보낸적이 있었다. 하지만 대답은 아주 명료했다.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너의 영어가 아니다. 너의 생각이다."라는 대답이었다.
우리 대학은 세상을 선도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어떻게 하면 생산해낼 것인지에 천착해야 할 것이다. 만일 영어로 전공강의를 하는 것이 그런 아이디어를 얻는데 필수적이라는 점이 명확히 입증된다면, 그때 가서 영어강의 정책을 추진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입증되지도 않은 이론을 가지고 모든 대학을 흔들어 놓고 교육의 지형을 뒤바꿔 놓는 일은 부동산 정책에 실패하는 것보다 더 혼란스런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세계적인 대학을 만들고 싶다면, 세계적인 생각이 토론되는 강의실을 만들라! 그게 영어든 한국어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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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7/03/05 15:05 | 생각에 대한 생각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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