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김경만선생님이 드디어 "도발"을 하셨네요. 만나 뵐 때마다 "지식인론"에 대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강정인선생님에 대해서는 개인적인 친분이 없지만(이분도 훌륭한 학자이실 것이다), 김경만선생님이 여기서 하고 계신 말씀의 진정성과 도덕성, 그리고 일종의 자신감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1995년, 그러니까 지금부터 10년도 더 된 석사 과정 시절, 김교수님의 과학지식사회학 수업을 들었을 때, 나는 몇 가지 충격을 받았다. 첫째는 사회학자가 철학자 이상으로 철학적인 문제에 천착하고 있는 모습이 놀라운 일이었고, 둘째는 "중심부"의 논의와
네트워크에 자신의 지적 관심을 "동화시키고" 또 그 메이저리그 경기에 한 명의 타자로서 홈런을 날리기 위해 애쓰시는 모습에서 신선한 충격이었고, 셋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즉, 깊이 있는 학자임에도 불구하고) 강의는 거의 지적인 개그를 보는 듯 했기에 더욱 충격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원 시절에서 가장 즐겼던 강의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선생님의 모습은, 자신의 연구 프로그램을 발전시키기 위해 "고독"을 택하시던 모습이었다(한국 지식인들의 전형적인 문제점 중 하나는 자신만의 연구프로그램도 없고, 지적인 고독을 두려워하는 것 아닌가?) 그러면서도 마음이 따뜻하고 솔직하고 정이 있는 분이었기 때문에 나는 선생님 찾아뵙는 것을 큰 기쁨으로 생각했다. 중요한 결정 때문에 고민스러울 때, 지쳐 있을 때, 심심할 때(?), 선생님을 찾아뵈면 우리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한 장소에서 서너 시간씩 이야기 꽃을 피울 때도 많았다. 내가 그 분께 배운 것 중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학자의 열정"이다. 그 분께 배운 "열정"은 화석화된 규범이 아니라 희노애락이 있는 인간적 실천이고 규범 같은 거였다. 나는 이런 것을 아무런 제도적 관계도 없는 일개 대학원생에게 솔직하게 나눠주신 선생님께 늘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선생님과 이런 추억은, 아래 모임에서 선생님이 한국 학계를 향해 하신 도발적 주장의 의미를 좀 더 깊게 만들어준다. 아마 한국에서 이런 주장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학자는 내가 알기로 그리 많지 않다. 내 제한된 관찰에 의하면, 외국의 유수 대학의 대가들 밑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기라성 같은 교수들도 한국에 들어와 5년 전후로 한국 지식 환경에 너무도 잘 "순응"하신다. 외국에서 자리를 잡았다면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행태를 보이기 일수이다. 행정적인 일, 각종 모임, 잡일등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치열한 연구는 박사 논문까지로 끝인 경우가 많고, 한국에서 명성을 유지하는 원천은 "외국 무슨 무슨 대학 박사"라는 타이틀이다. 더욱 요상한 것은, 그런 대학에서 당해보지 못한 대우들을 한국의 학생들에게는 너무 자연스럽게 한다는 것이다. 아마 외국에서 학생들에게 그런 식의 행태를 보였다면, 소송을 당하거나 쫓겨났을 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왜 이런 이중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 외국 유수 대학에서 보고 듣고 경험하고 대우받은 것들을 왜 국내에 와서는 후학들에게 제대로 나눠주지 않는지 말이다. 물론...당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대목에서는 "외국 대학에서는 말이죠..."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온다. 나는 이런 맥락에서 현 대학 사회의 최대 이슈 중 하나가 "영어강의 확대" 같은 데에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이런 해결책은 한국 대학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치열한 분석없이 외견상의 성과만을 위해 내놓은, 너무 쉬운 대답처럼 보인다. 상황은 너무 복잡하고 질문은 엉켜있는데, 대답은 너무 간단하다. "영어강의하면 글로벌화된다!!!"
나는 대학과 교수들이 고객인 학생들- 엄청난 액수의 수업료를 내고 공부하는 -을 위해, 그리고 미래를 맡아줘야 할 인재들에게 "과연 우리가 그들에게 무엇을 줘야 하는가"를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하버드 대학의 최근 결정도 참고해볼만 할 것이다).
http://www.fas.harvard.edu/home/news_and_events/releases/gened_05152007.html.
나의 짧은 대학강의 경험에 비춰보면, 학생들이 원하는 것, 또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급의 지식 자체 뿐만 아니라 그런 지식이 자신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끊임없이 묻게 만드는 가치 체계, 사고 방식, 그리고 열정이 아닌가 싶다. 이것은 유창한 영어실력보다 훨씬 더 상위에 있어야 할 항목들이며,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누구와 살든지간에 꼭 갖추고 있어야 할 항구적 덕목들이다. 나는 왜 대학에서 "무엇(what)과 왜(why)"를 학생들에게 줄지는 고민하지 않고 전달 방법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내 지식과 경험에 비춰보면 이건 완전히 헛다리를 짚은 방향이고 정책이다.
황우석 사태 이후로 대학내 연구 윤리 확립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필요한 일이고 내실있게 진행되길 바란다. 하지만 학자로서의 윤리와 의무가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대학에 있는 사람들은 연구자이면서도 교육자이다. 교육적 쟁점들(educational issues)에 대해 누구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종류의 사람들이다. 교육학 전공자이건 아니건 그건 전혀 상관없다. 교육 기관에 있는 이상, 그리고 그런 직업으로 연봉을 받는 이상, 교육적 쟁점들에 대해 숙의하고 뭔가를 실천해야 하는 것은 의무이며 직업 윤리이다. 한국의 대학이 갖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들이 한두가지가 아니겠지만, 이 시점에서 학생 교육을 위해 과연 무엇을 바로잡아야만 할 지에 대해 치열한 연구분석, 토론, 실천이 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수님들께서 먼저 "교수란 누구인가?"라는 반성적 질문을 진지하게 던지셔야 될 것 같다. "표절이네 아니네, 영어강의가 필요하네 아니네..." 이런 논의보다도 먼저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부터 던지고 토론하고 했으면 좋겠다. 정체성 확립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터져나오는 질문과 트렌드만 좇아가니까 대학교육은 점점 미궁으로 빠지는 듯한 느낌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래 모임은, 그 논쟁의 성패가 어떻든 간에, 매우 유익했을 거라 짐작된다. 좀 더 바란다면, 아래의 이슈에다 위에서 말한 교육적 쟁점들까지 논의가 된다면 더 좋겠다. 그리고 아래 이슈에 대해 내 견해를 말하자면, 나는 두 분 모두에게 동의한다. 아니, 두 분이 각기 주장하는 그런 것들을 "모두 다" 할 수 있는 대학교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즉, 두 분 모두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각자가 제대로, 치열하게 한다는 조건에서 말이다. 우리 지식계에는 다양한 수준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역할들을 해줄 지식인들이 필요하다. 선진 외국 같은 경우에는 제반 지식 층이 두텁기 때문에 교수는 그 중 일부만 담당하는 것으로 한평생이 가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우리는 상황이 똑같지 않다. 지식의 생산자, 중계자, 소비자 등의 분화가 덜 되어 있다. 지식의 생산자가 때로운 중계도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지식 수입상"이란 용어는 생산자는 없고 중계자만 있는 그런 상황을 꼬집는 표현일 것이다. 이른바 지식의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되어야 하는 것이 우리네 주변부 지식인의 슬픔이고 고뇌인 것이다. 하지만 이걸 꼭 부정적으로만 봐야 할까? 우리가 중계자만이 아니라, 생산자까지도 될 수 있도록만 자신을 향상시킨다면, 그건 오히려 주변부 지식인들의 "기회"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지식인마을에 가다>라는 책에서 이미 어줍잖게 이런 생각을 내비친바 있다. 축구에 비유하자면, 루니같은 최전방 공격수가 가끔씩 미드필드에서 뛸 수 있는 것, 오른쪽 왼쪽을 넘나들며 종횡무진 달릴 수 있는 박지성의 다재다능성(versatility)이 주변부 지식인의 덕목이며 기회일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다시 축구에 비유하면, 공격수인 황선홍이 홍명보를 수비수라는 이유만으로 비판하는 게 말이 안되듯이, 지식의 노동 분업과 그에 따른 기여도를 평등적으로 인정하지 못한다면 그 또한 이상한 일일 것이다. 상호 비판은 각자가 맡은 일들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 즉 홍명보가 수비로서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나 의미있는 것이 된다. 또 한번 비유하자면, 김경만선생님은 지금 우리 지식 축구계에 절실히 필요한 선수는 최전방 킬러라는 말씀이다. 선수층이 얕은 우리 팀을 고려할 때, 어쩌면 더 필요하고 현실적이고 독특한 것은, 킬러이지만 미드필드에서도 뛸 수 있는, 다시 말해 글로벌리티와 로컬리티를 동시에 갖고 있는 그런 선수들을 격려하고 길러내는 일일 수 있다. 나는 이것이 우리같은 주변부 지식인의 슬픔과 고뇌를 기회로 승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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