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섭에 대한 내 글(2)- <지식인마을에 가다> 중에서


 <통섭의 방법론(?)과 관련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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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질문에는 전공이 없다! 

 


(이하, ): 쑥스럽네요. 어쨌든 하기로 한 것이 시작해보세요.


김 __ (이하, ): 먼저 저희가 진행하고 있는 연구의 개요부터 간략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사범대학 4학년 수업 중에 ‘성인학습방법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분야에서 보통 이상의 성취를 이룬 분들에게는 특별한 학습 방법과 노하우, 그리고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과 정리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그분들을 직접 인터뷰하는 프로젝트를 수행중입니다. 제가 선생님이 쓰신 글도 읽고 수업도 들어보았는데 몇 가지 부분에 개척자적인 역할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생님이 ‘성공적 학습자’라고 생각하고 선생님의 공부 방법에 대해서 묻고 싶었던 겁니다.


: 그래도 저를 알아봐주는 분이 있었네요. (웃음) 농담입니다. 무슨 질문인지는 알겠는데 되게 거창하네요. 그러니까 제가 어떻게 공부하느냐를 알고 싶은 거죠?


: . 너무 식상한 질문인가요?


: 아닙니다. 매우 중요한 질문이에요. 사실 저는 몇 년 전부터 그 질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있었거든요. 사람들이 지식을 쌓는 데만 바쁘지,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물론 “공부를 어떻게 하면 좋은 대학에 간다”라든지 “강남의 아무개 선생의 학원 강의가 용하다”, “토익 고득점을 위해서는 이런 방법이 최고다”라는 등의 공부 방법은 넘쳐나고 있지만 정작 인생을 살면서 어떤 방식으로 지식과 교양을 넓혀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험해보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소수인 것 같아요. 이제는 ‘좀 더 큰 어떻게’를 생각해봐야 할 시점인 것 같아요.


: ‘좀 더 큰 어떻게’가 뭔지 궁금해요.


: 그냥 제 이야기를 해볼게요. 저의 공부 스타일은 어느 때부터인지 매우 산만해졌어요.


: ?


: 어떤 분야에서 질문이 생기면 그걸 꼭 다른 분야까지 끌고 다녀요. 가령, 심리학 시간에 정상적인 인간은 네 살 정도가 되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해보죠. 그러면 저는 머릿속으로 이런 질문을 해요. ‘그러면 침팬지도 그런 능력이 있을까? 있다면 침팬지는 몇 살에 그렇게 될까? 강아지는 어떨까?’ 제 머리는 이미 동물행동학 강의실로 가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이런 질문으로까지 번지지요. ‘로봇도 다른 로봇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


: 정말 산만하네요(웃음).


: 산만해 보이는 것은 맞아요. 하지만 어떻게 보면 매우 간결한 사고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왜냐하면 심리학, 동물행동학, 로봇공학 등의 여러 분야를 향해 공통된 질문을 던지는 경우이니까요. 사실 심리학, 경제학, 철학, 생물학 등의 전공분야는 원래부터 있었던 구획은 아니잖아요. 우리가 좀 더 효율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인공적인 칸막이죠. 각 칸막이 안에서만 통하는 질문이 있기는 하지만 중요한 질문들은 대개 특정 칸막이에 갇혀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 질문에는 전공이 없다는 말씀처럼 들리네요.


: 그것 참 멋진 표현이네요(적어 놓아야겠네). 위대한 질문은 전공에 구애받지 않는 것 같아요. 분야를 정해놓고 그 안에서만 질문과 답을 주고받으면 일정한 한계가 있지만, 질문을 정해 놓고 그것에 답하기 위해 연관된 분야의 지식들도 고려하게 되면 이해의 지평은 계속 넓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 그런 것을 선생님이 직접 경험하신 적이 있나요?


: 물론이죠. 몇 해 전에 전국의 인지과학학생들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한 적이 있었어요. 저는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인지과학적 연구를 발표하는 자리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실제로 인간과 기계, 기계와 기계, 동물과 동물, 동물과 인간, 심지어 동물과 기계의 커뮤니케이션도 다뤘지요. 또 세포와 세포, 분자와 분자간의 커뮤니케이션도 논의 주제였어요. 심포지엄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한 같은 질문을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세포학자, 동물행동학자, 인공지능학자, 언어학자가 머리를 맞댄 것이죠. 아주 재미있었어요.


: , 정말 대단했겠는데요.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사람도 그런 질문들을 할 수 있을까요?


: 저는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궁금한 게 있으면 그걸 억누르지 않고 오히려 키워보는 거예요. 대신 자기 전공에서만 맴돌지 않고 늘 다층적으로 생각해보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죠. 알고 싶은 게 있다면 용감하게 질문하면 됩니다. 오히려 많이 알면 좋은 질문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 하지만 용감하게 질문할 수는 있지만 좋은 질문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 그래서 저는 ‘용감한 질문’이라는 말보다 ‘정직한 질문’이란 말을 더 좋아합니다.


: 정직한 질문이요?


: 정말로 알고 싶은 것을 묻는 거예요. “질문이나 한번 해보자”가 아니라 자신의 지식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지식까지도 총동원하여 답을 알고자 하는 태도, 바로 그런 태도에서 정직한 질문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지식 총동원령’을 선포할 준비가 되어 있으면 어떤 질문이라도 저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 선생님과 나눈 첫 번째 화두는 ‘질문’인 것 같네요. 분야에 집착하지 말고 질문을 중심으로, 혹은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지식을 쌓으라는 말씀이시죠? 멋진 말씀이긴 한데 꼭 그렇게 해야만 할까요? 한 우물만 깊이 파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이건 저의 ‘정직한 질문’입니다.(웃음)


:(웃음) 물론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드린 말씀이 “한우물만 깊이 팔 것이냐, 아니면 여러 우물을 조금씩만 팔 것이냐”의 이분법적 구도를 전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제 말의 핵심은 정직하게 질문을 던지자는 것이에요. 그게 모든 지식의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요즘은 여러 분야의 지식들이 하나 둘씩 모여 몇 가지 원리들로 통합되고 융합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30-40년 전만해도 학문 분야들을 좀 더 쪼개고 나누는 일들이 활발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거죠. 분야들 사이에 놓였던 칸막이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통합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어요. 가령 생물학과 화학이 만나 생화학이 되고 철학, 언어학, 심리학, 컴퓨터공학 등이 만나 인지과학이 생겨나는 식이죠. 이제는 협동의 시대가 되고 있는 거예요. 미래 지식인은 틀림없이 이런 넘나듦의 미학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일 겁니다. 벌써부터 그런 무리들이 생겨나고 있어요. 제가 수업 시간에도 소개를 해드린 바 있죠? 엣저(edger)들 말이에요.


: 에지재단(Edge foundation)에 참여하는 지식인들 말인가요?


: 네 맞아요. 그들의 면면을 보면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석학들인데 그들이 화두로 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어보면 전문가가 아닌 대중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또한 진정으로 궁금해 하는 것들이에요. 그들은 ‘내 전공, 네 전공’을 따지지 않는 것 같아요. 곧바로 질문하고 함께 협력하며 답을 찾아가죠. 협력을 하려면 다른 분야의 지식도 어느 정도 습득하고 있어야겠지요. 이게 바로 미래 지식인의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 실제로 그들 중 상당수가 세상을 선도할 지식인들로 선정되곤 해요. (<지식인마을>을 짊어질 새싹들도 이렇게 통합적 사고력을 가진 사람들일 것이다.)


이제 ‘전공’이 무엇이냐고 묻는 시대는 가고 ‘질문’이 무엇인가를 묻는 시대가 도래 하고 있어요. 다양한 분야를 폭넓게 이해하는 제너럴리스트냐 한 분야에 전문성을 띤 스페셜리스트냐를 구분 짓는 시대가 아닌 통합적 시야를 가진 전문가, 즉 제너럴스페셜리스트인지가 중요한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죠. 지식의 순수혈통을 따지는 시대에서 지식의 하이브리드를 선호하는 시대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융합과 통섭은 미래 지식계의 최대 화두가 될 것 같은 느낌이에요.


 


출처: <지식인마을에 가다>(김영사, 2006) pp.198-207



 




by andologist | 2007/04/01 01:04 | 생각에 대한 생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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