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3월 31일
최근 한국의 통섭 논의를 보며...미래대학은 어떻게 오는가?
엊그제 몇몇 한국 언론에 따르면, 저명한 교수 20여 명이 "미래대학"을 위한 콜로퀴엄을 가지셨단다. 현재 지식 체계와 대학 체제에 대한 재고를 주장하며 학문간 통합, 융합, 통섭이 이뤄지는 미래를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지식체계와 대학이 세워져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미래 지식의 메가트렌드가 통섭이라는 얘기다.아주 반가운 뉴스였다.
"통섭"(큰 줄기를 잡다)이라는 용어는 참 신통하다. 사실 나는 이 용어를 도입하는 것에 처음에는 반대했었다. 왜냐하면 윌슨이 사용하려는 의미가 이렇게 번역하는 순간 변이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누구 말대로 하면 의미가 미끄러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원어를 소리나는대로 그대로 쓰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었다. 컨실리언스(Consilience). 내 논리는 이랬다. 우리가 postmodernism 같은 용어를 "후기근대주의" 혹은 "탈근대주의"로 번역하는 순간 그 두가지 의미를 다 포괄하는 원래의 뜻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기에 그걸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부르듯이, consilience도 그렇게 하자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최교수님은 그것이 합리적 제안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우리에게 적합한 새로운 용어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몇 번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나온게 바로 지금의 "통섭"이다. 이제 이 통섭이라는 meme은 한국 아카데미아의 화두로 등장했다. 심지어 대권후보들도 이 용어를 여기저기서 흘린단다. 아주 성공한 밈이다.
나는 가끔 이런 가정을 해본다. 만일 당시 내 뜻대로 "컨실리언스"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많은 이들에 회자되는 용어가 되었을까? 어쩌면 우리가 지금 바라던 것은 "통섭"이라는 용어보다 그 의미, 다시 말해 지식의 통합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친근하면서도 참신한 "용어"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어떤 경우에는 용어 자체가 거의 전부인 경우도 있다. 그 선정적인 광고 카피들을 보라!
내 생각은 이렇다. 1997년 윌슨의 컨실리언스가 미국에서 출간되었을 때, 미국 학계는 지식의 통합이라는 주제로 대대적인 심포지엄을 열었을 정도로 즉각적인, 그리고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마디로 타이밍이 끝내주는 주제였다. 적지 않은 학자들이 인정하듯, 설령 그 구체적인 내용에서 다소 엉성하거나 무리한 부분이 있었더라도, 그 책은 윌슨의 여느책 못지 않게 당시의 긴급하고 중요한 이슈들을 제시해주는 미래지향적 책이었다. 그리고 그의 선경지명은 10년이 지난 지금 하나 둘씩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되었다. 가령 나노융합과학은 지금 전 세계가 열광하는 새로운 미답지다. <통섭>은 한국에서 2005년에 번역출간되었다. 이건 번역자(들)의 게으름 혹은 바쁨때문에 벌어진 시간 지연이다. 하지만 그 사이드 이펙트는 오히려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만일...만일...이 책이 한국에서 1998년이나 한두해 뒤에 번역출간되었다고 해보자. 과연 지금과 같은 화두를 던지를 책이 되었을까? 물론 윌슨이라는 대가의 책이니 당시에 틀림없이 큰 주목을 받았을 법 책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처럼 학계를 문자 그래도 움직이게 만들었을 것 같지는 않다. 아마...어쩌면 10년 전의 자이리톨 껌과 같은 운명(한국 사회에서 너무 일찍 소개되어 초기 몇 년간은 전혀 주목받지 못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하려는 말은 이제야 한국은 지식의 통합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고, Consilience라는 개념은 그런 흐름의 방아쇄 역할, 혹은 교과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는 거의 10년이나 지연되어 출간된 책이지만 오히려 타이밍 자체는 더없이 좋았다는 얘기이다. 거기에 "통섭"이라는 매력적인 이름까지 붙여졌으니 언론은 그 뜻을 소개하는 기사를 꼭 쓸 수밖에 없고...그 결과는 "통섭"이라는 밈의 적응도가 날마다 높아지는 것이다. 마치 백신을 맞게되는 과정을 통해 파스퇴르의 패트리 접시의 가치가 증가하듯이 말이다(라투어가 도킨스의 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라투어의 행위자연결망 이론과 도킨스(정확히는 데닛)의 밈이론은 아주 유사하다. 논문 하나 잘 쓰면 대박날 것 같은 예감!). 그리하야 "통섭"이라는 밈은 지금 한국 학계에 바이러스처럼 퍼지고 있다. "통섭"이라는 용어 자체도 이런 확산을 더 용이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용어를 먹여살릴 수 있는 호스트(host)가 비로소 한국에는 최근에야 형성되었다는게 더욱 중요하다. 호스트의 영양상태가 부실해지면 통섭이라는 바이러스도 생존하기 힘들 것이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말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바램이 통섭이라는 밈의 적응도를 높이는 일이 아니라 통섭이라는 밈의 의미를 학계에 구현하는 일이라면, 궁극적으로는 구호나 선언보다는 구체적인 실천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가령, 실제로 온갖 소리를 다 들어가며 어렵게 통섭을 추구해온 인재들을 대학이나 기관에서 임용해서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줘야 할 것이고, 또 이들이 롤모델이 되어 많은 학생들이 용기와 도전의식을 갖고 통섭 정신을 젊을때부터 실천해볼 수 있도록 좋은 호스트 만드는 일을 해줘야 할 것이다. 나는 며칠전에 열린 <미래대학을 위한 콜로키엄>이 궁극적으로는 이런 일들을 위한 첫걸음이기를 기대한다.
미래대학을 지지하며...
"통섭"(큰 줄기를 잡다)이라는 용어는 참 신통하다. 사실 나는 이 용어를 도입하는 것에 처음에는 반대했었다. 왜냐하면 윌슨이 사용하려는 의미가 이렇게 번역하는 순간 변이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누구 말대로 하면 의미가 미끄러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원어를 소리나는대로 그대로 쓰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었다. 컨실리언스(Consilience). 내 논리는 이랬다. 우리가 postmodernism 같은 용어를 "후기근대주의" 혹은 "탈근대주의"로 번역하는 순간 그 두가지 의미를 다 포괄하는 원래의 뜻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기에 그걸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부르듯이, consilience도 그렇게 하자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최교수님은 그것이 합리적 제안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우리에게 적합한 새로운 용어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몇 번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나온게 바로 지금의 "통섭"이다. 이제 이 통섭이라는 meme은 한국 아카데미아의 화두로 등장했다. 심지어 대권후보들도 이 용어를 여기저기서 흘린단다. 아주 성공한 밈이다.
나는 가끔 이런 가정을 해본다. 만일 당시 내 뜻대로 "컨실리언스"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지금처럼 많은 이들에 회자되는 용어가 되었을까? 어쩌면 우리가 지금 바라던 것은 "통섭"이라는 용어보다 그 의미, 다시 말해 지식의 통합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친근하면서도 참신한 "용어"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어떤 경우에는 용어 자체가 거의 전부인 경우도 있다. 그 선정적인 광고 카피들을 보라!
내 생각은 이렇다. 1997년 윌슨의 컨실리언스가 미국에서 출간되었을 때, 미국 학계는 지식의 통합이라는 주제로 대대적인 심포지엄을 열었을 정도로 즉각적인, 그리고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마디로 타이밍이 끝내주는 주제였다. 적지 않은 학자들이 인정하듯, 설령 그 구체적인 내용에서 다소 엉성하거나 무리한 부분이 있었더라도, 그 책은 윌슨의 여느책 못지 않게 당시의 긴급하고 중요한 이슈들을 제시해주는 미래지향적 책이었다. 그리고 그의 선경지명은 10년이 지난 지금 하나 둘씩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되었다. 가령 나노융합과학은 지금 전 세계가 열광하는 새로운 미답지다. <통섭>은 한국에서 2005년에 번역출간되었다. 이건 번역자(들)의 게으름 혹은 바쁨때문에 벌어진 시간 지연이다. 하지만 그 사이드 이펙트는 오히려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만일...만일...이 책이 한국에서 1998년이나 한두해 뒤에 번역출간되었다고 해보자. 과연 지금과 같은 화두를 던지를 책이 되었을까? 물론 윌슨이라는 대가의 책이니 당시에 틀림없이 큰 주목을 받았을 법 책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처럼 학계를 문자 그래도 움직이게 만들었을 것 같지는 않다. 아마...어쩌면 10년 전의 자이리톨 껌과 같은 운명(한국 사회에서 너무 일찍 소개되어 초기 몇 년간은 전혀 주목받지 못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하려는 말은 이제야 한국은 지식의 통합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고, Consilience라는 개념은 그런 흐름의 방아쇄 역할, 혹은 교과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는 거의 10년이나 지연되어 출간된 책이지만 오히려 타이밍 자체는 더없이 좋았다는 얘기이다. 거기에 "통섭"이라는 매력적인 이름까지 붙여졌으니 언론은 그 뜻을 소개하는 기사를 꼭 쓸 수밖에 없고...그 결과는 "통섭"이라는 밈의 적응도가 날마다 높아지는 것이다. 마치 백신을 맞게되는 과정을 통해 파스퇴르의 패트리 접시의 가치가 증가하듯이 말이다(라투어가 도킨스의 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라투어의 행위자연결망 이론과 도킨스(정확히는 데닛)의 밈이론은 아주 유사하다. 논문 하나 잘 쓰면 대박날 것 같은 예감!). 그리하야 "통섭"이라는 밈은 지금 한국 학계에 바이러스처럼 퍼지고 있다. "통섭"이라는 용어 자체도 이런 확산을 더 용이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용어를 먹여살릴 수 있는 호스트(host)가 비로소 한국에는 최근에야 형성되었다는게 더욱 중요하다. 호스트의 영양상태가 부실해지면 통섭이라는 바이러스도 생존하기 힘들 것이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말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바램이 통섭이라는 밈의 적응도를 높이는 일이 아니라 통섭이라는 밈의 의미를 학계에 구현하는 일이라면, 궁극적으로는 구호나 선언보다는 구체적인 실천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가령, 실제로 온갖 소리를 다 들어가며 어렵게 통섭을 추구해온 인재들을 대학이나 기관에서 임용해서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줘야 할 것이고, 또 이들이 롤모델이 되어 많은 학생들이 용기와 도전의식을 갖고 통섭 정신을 젊을때부터 실천해볼 수 있도록 좋은 호스트 만드는 일을 해줘야 할 것이다. 나는 며칠전에 열린 <미래대학을 위한 콜로키엄>이 궁극적으로는 이런 일들을 위한 첫걸음이기를 기대한다.
미래대학을 지지하며...
# by | 2007/03/31 15:01 | 생각에 대한 생각 | 트랙백(1)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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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통섭, 사회문화 트렌드의 변화와 웹2.0 - 브랜드..
통섭, 사회문화 트렌드의 변화와 웹2.0 - 브랜드리포트커뮤니팅2007 브랜드리포트닷컴에서 주최하고 (주)메타브랜딩과 펀마케팅 클럽이 후원하는 BM실무자들의 잔치인 브랜드 리포트 커뮤니팅 2007 행사가 삼성동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렸다.브랜드 컨설팅으로 널리 알려진 (주)메타브랜딩은 필자가 일하고 있는 RTV의 개국당시 BI(브랜드 아이덴티티)작업에 후원을 해준 업체이기도 하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로고와 네이밍은 메타브랜......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