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O.Wilson을 만나다(1)

댄과 스쿼시를 치던 시절, 그러니까 그가 수술받기 전, 격렬하게 몇 게임을 하고 나서 잠시 쉬던 차였다. 그 자리에는 Rick Griffin(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Simon Baron-Cohen 밑에서 학위를 하고 터프츠에 멜론 포닥으로 와 있는 친구로 아이들의 ToM에 대해 연구중이다.), 그의 친구, 그리고 댄, 나, 그리고 센터의 대학원 조교 한명이 같이 있었는데, 어떻게 하다가 E. O. Wilson 얘기가 나왔다. 내가 "왜 윌슨이 책 제목을 Creation이라고 지었는지 궁금하다"는 말을 꺼냈더니 즉석에서 댄이 윌슨하고 점심 한번 하면서 같이 얘기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다. "너는 그의 consilience도 번역하지 않았냐"고 덧붙이면서...나야 "it sounds great!"라고 할 수 밖에....내 어찌 평생 윌슨 선생님같이 훌륭한지 지식인을 개인적으로 만나뵐 수 있겠는가?

그러고 나서 댄이 수술을 받았고....댄은 나와 크리스마스 이멜을 주고 받는 중에 내년 1월 정도에 윌슨과 함께 만나자는 약속을 하셨다. 그러던 것이 결국 2007년 3월 13일에야 성사되었다. 1~2월은 윌슨선생님(이하, 윌슨)이 여행을 많이 하셔야 해서 시간을 내기 힘들었었다.

약속은 12시 윌슨 연구실에서였다. 11시에 댄의 연구실에서 만나 하버드에 같이 가기로 했기 때문에 나는 시간에 맞춰 학교로 갔다. 댄을 처음 만날 때도 그토록 긴장되지는 않았는데 왠지 모를 설레임이 느껴졌다. 어쩌면 어렵게 성사된 약속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사실 나는 댄이 윌슨과 약속을 자꾸 못잡아 내게 이야기하는 것이 좀 미안해서 댄에게 윌슨이 원래 리플라이를 빨리빨리 안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본 적도 있었다. 그랬더니 그건 아니고 여행중인 것 같다고 하면서...윌슨은 내 친한 친구니 너는 다른 걱정은 말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어쨌든 나는 그날 아침 일찍 일어나 목욕재걔를 하고 생전 안닦던 구두도 슬쩍 문지르고 집문을 나섰다.

11시 정각에 댄의 연구실(센터 사무실 한켠)에 가서 기다리며 테레사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댄이 조금 늦게 핸드폰으로 전화소리를 들으면서 오고 있었다. 그리고 가방을 챙겨서 나에게 같이 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그는 차에 타서도 전화를 놓지 않고 뭔가를 듣고 있었는데 조금 있다 알고 보니 NPR(national public radio)의 한 프로에 전화 인터뷰를 하는 중이었다. 그날은 국가의 종교 교육에 관한 어떤 저자와 대담을 하고 있었는데 종교교육에 대한 댄의 견해를 인터뷰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버드 대학이 있는 케임브리지로 가는 내내 댄은 한손에 전화를 한손에는 핸들을 잡고 갔다. 그리고 한두 차례 의견을 주고 받았다. 그의 의견은 "No.no...나는 종교를 이땅에서 몰아내자는 게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종교들이 더 좋은 종교가 되도록 돕자는 것이다. 나는 모든 학생들에게 종교 교육을 해야 한다는 생각한다. 다만 특정한 종교가 아니라 주요한 모든 종교들의 경전, 의식, 주장들에 대해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믿는다...." 뭐 대충 이런 얘기였다. 어디다 파킹할 생각도 않고 가면서 인터뷰하는 댄의 모습이 참 신기했다. 아마도 윌슨과의 만남 시간에 늦지 않는게 더 중요해 보였다. 그리고 그 인터뷰는 오늘 윌슨과의 만남에서 나올 주제를 예비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5분 정도 일찍 도착해 윌슨의 실험실이 있는 하버드 자연사박물관 4층으로 향했다. 도착해서 문을 두드리니 그의 비서(할머니 비서?)와 그가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줬다. 댄의 손을 두손으로 잡으며 반갑다고 활짝 웃는 그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댄이 인사를 주고 받자마자 그에게 나를 소개해줬다. "서울에서 온 내 포닥이며 당신의 consilience를 번역한 친구라고.." 나는, "만나뵙게 되어 큰 영광입니다"라고 말했다. 더이상 무슨 첫마디를 하겠는가?
그는 댄과 나를 자신의 서재로 먼저 대려가 이것 저것 설명을 해주고 자신이 지금 보고 있는(아마 서평을 쓰려는가 보다) 책을 소개해주고는 문을 나와 바로 앞에 설치되어 있는 열댓개의 철제 파일박스를 보여줬다. "이건 내가 개인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논문들입니다." 내가 물었다. "혹시 다 선생님이 쓰신 논문들?" "아 그건 아니죠. 내가 논문을 많이 쓰긴 했지만 어찌 이정도겠냐?"고.. (최재천선생님이 서울대 행동생태학 연구실에 계실 때 복도에 놓인 똑같은 종류의 철제 파일 박스가 있었다. 나는 거기서 진기한-왜냐면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좋은 - 논문들을 발견하고 기뻐한 적이 여러번 있었는데...지금 생각해보니 그 철제 파일의 기원이 혹시 윌슨에게서 온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고는 바로 비서실과 선생님 연구실 중간에 있는 회의실 같은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점심은 사가지고 온 쓰시 도시락을 같이 먹자고 하시면서.

나는 그날 통섭(consilience의 국내 번역 제목) 두권과 Creation 한권을 가방에 챙겨 가져갔다. 통섭 한권은 기념으로 선생님께 드리고, 한권은 Creation과 함께 싸인을 받아갈 생각이었다. 통섭을 꺼내놓고는, 내가 Jae Choe(외국 학자들은 최재천선생님을 이렇게 부른다.)와 함께 Consilience를 번역했고 Jae Choe는 내 advior 였다고 하자, 윌슨은 그럼
"내 손자"가 오늘 온 것이라며 아주 반갑게 맞아주셨다. 통섭이 한국에서 1만부 이상 팔렸다고 하자, 바로 한국의 인구가 얼마정도 되냐고 되물으신다. 4500만 정도 된다고 하자 그러면 미국으로 치면 10만부 이상 나갔다는 얘기니 큰 성공이라고 하셨다. 나는 그만큼 팔린 것보다 더 의미있는 것은, 이 "통섭"이라는 개념이 한국의 아카데미아에 아주 중요한 화두로서 널리 퍼지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거들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다.

윌슨은 내가 코리아에서 왔다는 말로부터 대화를 DMZ에 관해 끌고 가셨다. 나는 사실 다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댄은 DMZ에 대해 처음듣는 모양이었다. 길이와 넓이가 어느정도 되냐고 물어보는데 윌슨도 대략만 알고 있는 것 같았고 나는 정확한 답을 줄 수 없어서 좀 민망했다. 어쨌든 윌슨은 통일 후 DMZ 운용에 대한 자신의 아이디어까지 얘기했다. 사람들이 좀 많이 다녔던 곳은 조그맣게 해서 관광지로 개발하고 나머지 처녀지는 상태 그대로 유지하자는 안이었다. 그러면 관광을 온 사람도 멀리서나마 그 보고를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DMZ를 national heritage로 정해야 하고....생태문제에 여생을 헌신하기로 작정하신 분답게 매우 구체적인 고민을 하고 계셨다. 내가 언제부터 DMZ에 관심을 가지셨나고 했더니 7-8년 되셨단다. 그러면서 빨리 통일이 되도록 부시가 제발 잘 좀 하면 좋겠다고 웃으셨다.

to be continued...(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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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ologist | 2007/03/19 13:12 | 사람과 사람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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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7/03/20 14:1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at 2007/03/20 18:28
드디어 윌슨 선생을 만나셨군요.
윌사마와 댄사마가 건강한 걸 보니 좋습니다.
어, 그리고 살이 조금 빠지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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